트레바리 후기를 써 보려고 한다. 나는 올해 5월부터 8월까지 럽럽-끼리라는 트레바리 클럽에 참여했다. 참고로 이건 온전히 내 돈 내고 신청했던 클럽 후기이다. (후원 해주시면 더 잘쓸 자신 있습니다!) 트레바리 첫 4개월동안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가식없이 솔직하게 적어 보려고 한다.
사실 이번 클럽은 3월에 시작했어야 했다. 기억상으로 2월달에 신청을 했던 것 같다. ㅋㅋ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졌고, 모임은 연기되었다. 마침 그 때가 내가 회사를 퇴직한 시점과 맞물렸다. 사실 진지하게 환불 받을까도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냥 정신없어서 잊고 살았고 결국 5월달에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첫 모임을 하게 되었다.
5월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by 알랭 드 보통
첫 모임때는 거의 15명 이상 왔던 것 같다. 다들 초면인데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서로 얼굴을 잘 보지 못한 건 아쉬웠다. 알랭 드 보통이라는 한국에서 꽤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프랑스 소설가의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주인공이 결혼을 하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 그 가운데서 아내와 갈등이 생겼을 때 얼마나 힘들어하고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대해서 담담하게 적었다. 클럽에 왔던 열 댓명의 사람들이 모두 미혼이었기에 아마 결혼 생활이 어떤지를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지인들의 사례들을 통해 그리고 본인들의 과거사(?)를 통해 각자가 사랑이 얼마나 힘든지를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혼의 시작은 청혼이 아니고, 심지어 첫 만남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사랑에 대한 생각이 움틀 때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맨 처음 영혼의 짝을 꿈꿀때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p12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결혼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인 경우가 많지만, 현실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이 소설은 다소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낭만으로 가득찬 연애가 끝나고 시작한 결혼 생활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남녀가 결혼을 하고 나서 겪는 미묘한 심리적 변화에 집중하면서 책을 읽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무릎을 탁 치며 공감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라비는 책이 끝나는 순간까지 외도의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하고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결혼 생활이라면 외도라는 큰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럽럽끼리 5월 모임 발제문 7번
연령대가 20대보다는 30대가 더 많아서 그런지 다들 과거에 열정적이고 때론 무모했던 사랑 경험이 한 두개씩은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사랑에 빠지면서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고 그러한 아름다운 것들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그 아름다움 뒤에 있는 잔혹하고 냉정한 현실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은 우리의 혼란스럽고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부분을 우리의 연인이 다른 누구보다,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드러난 순간 최고조에 달한다.
이들은 우리를 간파해내고, 신뢰하고 나눌 줄 아는 우리의 능력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알아보고 공감해주고 용서해준다.
사랑은 우리의 당황스럽고 난처한 영혼에 대한 연인의 통찰력에 바치는 감사의 배당금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p36
사람이 많아서 나 같은 경우는 파트너님이 지목하실 때만 이야기를 하고 그 외에는 주로 듣기만 했다. 학교에 있을 때 대학생들끼리 책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동아리는 해본 적이 있었지만 (거기서는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다), 여기서는 내가 막내였고 모두가 사회인이어서(난 그 당시 백수였다 ㅋㅋ) 대화 주제가 더 어른스럽고 현실적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배경도 다른 사람들이 모인것 치고는 되게 대화가 풍성했고 무엇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나는 좋았다.
매번 모임 때 마다 발제자가 있고 발제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딱히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가끔씩은 좀 더 책의 내용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게 완전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듣는게 때론 더 좋았다. (사실 책을 읽는다곤 하긴 했는데 그리 열심히 읽지는 않았다) 3시간 반정도의 시간이 정말 금방 지나갔다.
6월 : 하버드 사랑학 수업 by 마리 루티
두 번째 모임 전에 번개도 하고 조금씩 같은 클럽 사람들끼리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모임을 가니 더욱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책은 마리 루티라는 심리학 교수가 쓴 사랑학에 관한 책이다. 책에서는 우리가 기존에 사랑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오해와 진실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예를 들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와 같은 책은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통념을 우리에게 심어주기 충분하다. 저자는 이러한 통념에 무의식적으로 익숙해진 우리와 그러한 사회를 향해 통념을 깨는 사례들을 이 책에서 소개하면서 선입견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명한 교수님이 쓴 책이라곤 하지만, 우리 사이에서는 상당한 부분에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열띤 토론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전반적으로 자신을 좋은 사람인 척 꾸미려 하지말고 본연의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노출했을 때 진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의 대상을 만나기 위해 정말로 꾸밈 없이 나를 다 내비치는게 과연 효과적이라고 생각사시나요?
럽럽끼리 6월 모임 발제문 4번
기억에 남은 이야기는 많은 여성들은 밀당을 해야 자신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루티 교수는 밀당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하는 행동이라고 말한다는 부분이었다. 이 글을 보면서 완전히 동의하긴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되었다. 우리가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흥정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금액을 충분히 내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만약 돈이 엄청 많은 사람이 온다면 흥정을 하지 않고 바로 살 것이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지만 연애는 넓은 범위에서 거래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밀당을 너무 자주 하는 것 보다는 그 에너지를 나한테 쏟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 더 이익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은 어렵고 재미가 없었다 ㅋㅋㅋㅋ 책 소개 부분에서는 뻔한 연애지침서와 같은 조언을 하지 않는다고 하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 책이 아무래도 여성 독자들을 타겟으로 쓴 책이다 보니 여성분들은 또 더 읽고 공감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좀 지루했다. 차라리 아예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고 찬반 토론을 하는게 더 유익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게 되어 있다." 라는 말처럼 될 관계는 애쓰지 않아도 유지되고, 안될 관계는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끝내 유지되기 어렵다. 이런 운명론적인 얘기에 공감하는가? 아니라면 우리가 애써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
럽럽끼리 6월 모임 발제문 7번
우리 클럽은 클럽장이 없는 클럽인데, 그러다보니 파트너와 발제자의 역할이 참 중요한 것 같다. 나도 발제를 한 번 해 보긴 했지만 정말 어렵다. 발제자가 그 모임이 적당한 긴장감과 논쟁이 유지되며, 그리고 그 안에서 구성원들이 깨달음을 얻고갈 수 있게 하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유료 모임이고 다들 연령대가 어느정도 있다보니 모임 수준에 대한 기대치가 전반적으로 높은 듯! (그래서 나는 파트너나 발제자는 앞으로 못하겠다 ㅋㅋ)
7월 : 사랑의 기술 by 에리히 프롬
세 번째 모임을 하기 전에도 번개를 했다 ㅋㅋㅋ 우리 클럽은 번개를 참 자주 하는 것 같다! 두 번째 번개 때는 이태원에 있는 스튜디오를 가서 사진을 찍었다. 재미있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세 번째 모임은 사랑에 대한 나름 고전(?)으로 인정받는 책에 대해서 모임을 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이 책은 지난번 책보다 더 어려웠고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 것 같았다. 확실히 이럴 때는 클럽장이 있는 클럽이 부럽기도 하다 ㅎㅎ 이 책에서 프롬은 현대인들이 사랑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편견을 지적한다.(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편견이 참 많다. 유독 심한 것 같은데 도대체 왜 그런걸까?) 프롬은 현대인들이 사랑은 배울 필요가 있는 개념이 아니라고 착각하며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닌 사랑을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사랑을 능력이 아닌 대상의 문제로 생각하며, 사랑을 하게 되는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상태'를 혼동한다고 말한다.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안달을 하는 자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 가난해진 사람이다.
<사랑의 기술> p44
프롬은 인간이 고독, 무력감, 분리 등의 감정을 느끼면서 실존을 마치 감옥으로 여기게 되는데 이에 대한 해답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꽤 동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나도 교환학생을 6개월 다녀오면서 그 안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고독을 느끼면서 정말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튼 인간은 그래서 합일을 이루려고 하는데 과거에는 그 방향이 첫 번째는 도취적 합일(orginastic state)으로 원시 민족이 성적 난행 의식을 하는 등이었다면 현대에는 술, 담배, 마약, 사랑없는 섹스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일치에 의한 합일, 세번째는 창조적 활동에 의한 합일이다. 그리고 프롬은 이러한 세 가지 방식의 합일이 분리 상태에서 느껴지는 불안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 아니며 완전한 해답은 대인간적 결합, 다른 말로 사랑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랑의 기술이 예술적 기술을 익히는것과 같다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그 어떤 악보도 연주해내는것 처럼 사랑의 기술의 마스터라면 더 많은 이성, 더 다양한 이성을 사랑할수 있다는 이야기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폴리아모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1:1 관계만 고집하는 사람보다 사랑의 기술에 능한걸까요?
럽럽끼리 7월 모임 발제문 3번
나도 이 책을 읽다가 끝까지 다 못 읽고 포기했는데, 우리 클럽 모임에서 많은 분들이 그랬던 것 같다.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 천천히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날 뒷풀이는 책이 어려워서 그랬는지 진짜 엄청 늦게까지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8월 :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말 것 by 김달
마지막 모임이었다. 이 모임도 코로나 때문에 못 모일 뻔 하다가 겨우 모일 수 있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되게 정이 많이 들었고 매월 정기모임 1회, 비정기 모임 1회 이상 ㅋㅋ 하면서 꽤 서로에 대해 알게 되어서 그런지 더더욱 아쉬웠다 ㅠㅠ 네 번째 모임은 내가 발제를 했는데, 인기 유튜버 김달님의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말것>이라는 책으로 모임을 진행했다. 나는 이 분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연애에 대해 되게 현실적인 조언들을 해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가졌다. 반면 그에 비해 책은 깊이가 좀 얕아서 아쉬웠다.
대등한 관계라는 것은 상대방을 대등하게 대하라는 말이 아니라 상대를 대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대하라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말 것> p63
마지막 모임이어서 서로 그동안 있었던 일들, 가지고 있는 고민들, 지금 열심히 진행중인 썰(?) 등등을 이야기 하다 보니 정작 책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못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전혀 아쉽지는 않다. 다행히 책이 어렵지 않아 다들 술술 읽으셨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중간에 서로의 SNS를 보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 것 같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도 가졌는데 나름 재밌었던 것 같다.
너무 작은 일에 의미 부여하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 언제나 중요한 건 자기 중심을 잡는 것이다.
'나를 섭섭하게 하는 부분마저도 그 사람의 일부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말 것> p142
김달님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과연 지금보다 더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시기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아마 많은 부분은 공감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경험을 다양하게 해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더불어 이번 시즌 좋은 사람들하고 같이 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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