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비판’ 이라는 단어는 낯설다. 때로는 금기시 되기도 한다. 학창시절 내신과 수능의 경쟁에서 옆에 있는 친구를 이기기 위해서 누군가의 의견을 ‘비판’할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는 건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쳐도, 성인이 된 이후도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는 참 잘하면서,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건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나는 불평불만과 비판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전자는 구체적인 해결 방향이나 방법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한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족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고, 후자는 그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문제점이 무엇이며 그것에 대해서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 후 의견을 내놓거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말한다고 이 둘을 스스로 규정했다.
대학 강의가 끝나고 많은 교수님들은 학생들에게 질문이 있으면 자유롭게 하라고 하신다.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도 순서가 끝나고, 강연자는 질문을 받는 시간을 대부분 가지려고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또는 질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어른들의 모습이 이러한데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 과연 얼마나 질문을 할까? 어른들에 비해 더 적게 하면 적게 할 것이다. 이러한 어른들, 이러한 학생들이 지금 눈 앞에서 자신에게 말을 한 대상에게도 자신과 생각이 다른 경우에 비판을 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과연 이들은 이 사회, 이 국가, 이 세계의 수 많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비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한두명이 보여주는 모습이면 이것은 그들의 개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구성원의 다수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 사회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질문을 아직까지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회이고, 건강한 비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회라는 것이 내가 현재 바라본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이다.
비판이 왜 중요할까? 여기서는 칸트 선생님의 말을 잠깐 빌리고자 한다. 계몽주의를 이야기 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렇게 저술하였다. “세상의 온갖 이치의 본부는 다름아닌 인간 자신의 이성이라는 것”과 여기에 덧붙여서 “모든 진리의 본부를 인간 이성에 두지만, 그 이성은 자기비판을 통하여 한계를 자각한 이성이다.” 그러므로 “이성은 이성에 대해, 이성이 하는 업무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인 자기 인식의 일에 새로이 착수하고, 하나의 법정을 설치하여, 정당한 주장을 펴는 이성은 보호하고, 반면에 근거 없는 모든 월권에 대해서는 강권적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의 영구불변적인 법칙에 의거해 거절할 수 있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이성이 또 다른 ‘순수한 이성의 이론적 체계(형이상학)’를 비판하는 ‘순수 이성 비판’을 주장한 것이다. 우리 눈에 흠 없이 완벽하게 보이는 이론, 현상, 체계라도 결국은 또 다른 이성은 그 이론, 현상, 체계를 비판해야 진정한 계몽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칸트는 여긴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비판 하길 두려워 하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까? 이에 대한 답은 아래 링크에 첨부한 김누리 교수님의 강연에서 더 잘 설명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분의 말씀을 정리하면
1.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아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education)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기회가 대한민국 교육에서는 개개인에게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2. 비판을 하고 우리가 내는 목소리가 사회에 영향이 끼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직접 보고 깨달아야 하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한민국 교육을 통해 이러한 경험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정도로 우리가 비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비판하는 것을 게으르게 하였고, 그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한국은 겉으로는 단기간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무기력함, 우울증,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으며 무한한 경쟁과 물질만능주의, 지역이기주의, 빈부격차 등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아 이 사회를 디모티베이션 하게하는 문제점들이 현재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앞서 말한 불평불만에서 끝나고 나아지는 건 없다. 사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꽤나 오랫동안 고민을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해당 강연 말미쯤 이에 대한 약간의 답을 얻었던 것 같다. 강연에서 “여성을 해방시킨 주체는 여성이었고, 흑인을 해방시킨 주체는 흑인이었다. 그러므로 한국 학생들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한국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부터 시작해서 나부터 이 문제를 공론화 하고,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려고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해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비판을 하고 기득권을 설득시켜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힘들고 지루한 과정이다. 그 과정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방법은 논리가 튼튼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고 힘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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