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22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제러드 다이아몬드, 1998)

[Book Review] #22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제러드 다이아몬드, 1998)



제목: 총, 균, 쇠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 (지리학 교수)





제 1부: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


  인간의 조상은 약 7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호모하빌리스, 호모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을 거쳐 약 5만년 전 '대약진' 이라는 시기 이후 크로마뇽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석기와 골기를 이용하여 창의적인 도구를 만들었고 라스코 동굴에 예술작품도 남겼다. 그 전의 인류와 확연히 다른 특성을 지닌 이 인류는 수십만년 동안 살아왔던 네안데르탈인을 몇천 년 이내에 멸종시킨다.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의 다른 예를 들면, 약 3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독특한 점은 뉴기니에서 캥거루보다 큰 대형 포유류를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수백 만 년 동안 인간의 위협없이 살아온 온순한 대형 포유류들이 인간에 의해 제거되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우린 일찍 출발한 생물군이 항상 우월하고 살아남으리란 법은 없으며, 또 다른 요인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폴리네시아의 모리오리족과 마오리족 충돌 사건을 통해서는 같은 문명에서 시작했을 지라도 환경적 변수(기후, 지질유형, 해양자원, 면적, 지형적 분열, 고립성 등)에 의해 발전의 속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구밀도 같은 요소도 민족의 정치, 경제,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인구밀도가 비교적 높은 민족은 전체 인구의 일부만 농경민이 되고 비생산자들을 먹여 살릴 잉여 농산물을 수확하며 추장에게 더 많은 권력이 집중될 수 있다. 

  다른 사례인 아타우알파 생포사건을 통해서는 구세계(유럽)가 왜 신세계(아메리카)를 점령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준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총, 균, 쇠 때문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총과 쇠칼, 갑옷 등은 인디언들의 돌, 청동기, 나무 곤봉 등을 가볍게 제압했다. 또한 유럽에서 퍼트린 천연두, 홍역, 흑사병 같은 질병은 면역력이 없는 수 많은 인디언들을 자멸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외의 해양기술과 정치 조직 같은 부가적인 요소들을 고려해 보았을 때 던지고 싶은 질문은 '왜 이러한 이점들이 유럽에 편중되었을까?'이다.


제 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문명이 발달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식량 생산 능력이었다. 많은 열량과 다양한 먹거리 및 도움을 주는 가축이 선택되었고 자연스럽게 식량생산민족이 수렵채집민보다 인구밀도가 높아졌다. 특히 유라시아의 말 같은 가축은 동식물의 가축화, 작물화가 정복전쟁 에까지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인류의 역사는 유산자와 무산자(농업의 힘 소유에 따라 구분)의 불평등한 갈등으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현대의 대표적 곡창지대는 대부분 식량생산이 비교적 늦었다. 식량생산연대는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할 수 있지만 방법에 따라 오차가 발생한다.

  식량생산의 기원은 아예 독립적으로 시작하거나 토종식물을 가축화, 작물화 한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수렵민이 창시작물을 들여와 농경민이 되었거나, 상대적으로 발달된 농경민이 수렵민을 침략해서 지역을 차지할 수도 있다. 결국 식량생산을 일찍 시작한 지역이 총,균,쇠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일찍 출발한 것이다.

  농경민들은 수렵채집민보다 체구도 작고 영양상태도 나빴으며 질병에 취약해서 평균적으로 일찍 죽었다. 하지만 1. 야생 먹거리가 점점 감소하고 2. 식물의 작물화에 따르는 보상이 많아지고 3. 식량생산에 필요한 기술들이 계속 발전하고 4. 인구밀도가 증가하면서 '자가 촉매 작용'으로 식량생산이 수렵채집보다 우세해진다. 단, 두 가지 방식은 서로 경쟁하는 대안적 방식임을 명심하자. 

  야생식물의 작물화는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유전적인 변화가 일어남으로서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씨앗은 멀리 운반되기 위해 맛있고 향기로운 과육으로 감싸져 있는 것이다. 반면 종자는 번식을 위해 쓴맛, 독성을 가지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의 주요 농작물 작물화 유형을 보면 먹을 수 있고 수확량이 많으며 성장속도도 빠른 밀, 보리, 완두콩 등이 최초로 재배되었고 그 후에 과실 수 및 견과 수가 오랜 재배기간이 걸림에도 재배방법이 쉬워서 작물화되었다. 또한 도토리는 작물화가 안 되고 아몬드는 된 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고대의 야생식물을 선택하는 과정은 무의식적이었고 불가피한 점이라는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 연평균 총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농작물은 12종 뿐이다. 그만큼 야생 식물의 작물화가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작물화가 성공적이었던 이유를 살펴보면 1. 지중해성 기후 2. 야생조상의 풍부하고 높은 생산성 3. 자화수분 식물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 있다. 특히 서 유라시아 지중해성 기후는 다른 지중해성 기후보다 넓고, 계절별 연도별 기후변화가 크며, 짧은 거리 안에서 고도 및 지형 변동이 심하고, 가축화 된 대형 포유류의 야생 조상도 풍부했으며, 수렵채집 생활의 경쟁력이 약했기 때문에 더 많이 발달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뉴기니는 독립적으로 오랜 생활 농경 생활을 해 왔지만 (지금까지!) 중요한 곡류가 1종도 작물화 되지 못했고, 가축화 할 수 있는 대형 포유류가 전혀 없었으며, 뿌리 작물의 단백질과 열량이 부족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뉴기니 인들은 야생동식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속도가 느렸던 것이다. 

  미국 동부도 마찬가지로 아메리카의 생물상과 환경이 충분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 뉴기니, 미국 동부의 차이점은 민족 때문이 아니라 야생 동식물의 차이 때문이고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서 더 생산적인 농작물을 신속하게 들어오게 해서 활용했다. 사람들은 유용한 식물은 식별할 줄 알고 문화적 보수주의나 금기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작물화에 적합한 식물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꼭 필요한 대형 포유류는 20세기 이전까지 단지 14종만 가축화되었다. 왜 이렇게 적은 숫자의 동물만 가축화가 되었을까? 그 전에 대부분의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 14종 중 13종이 유라시아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주목해보자. 후보종 수가 72종으로 가장 많았지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도 51종, 남북아메리카도 24종의 후보종이 있었음을 고려했을 때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우리는 비유라시아 인들도 유라시아 인들과 같이 가축을 받아들이고 애완동물을 원했던 점을 보았을 때, 이건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지역의 야생 포유류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형 포유류는 B.C 8000년 ~ 2500년 경에 가축화가 되었는데 소형 포유류는 최근까지 가축화가 진행되었다는 점으로 볼 때(햄스터는 1930년대에 가축화가 되었다.) 인간이 이들을 얼마나 필요로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가축화의 과정에서는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이 작용하는데 가축화에 성공하려면 단 한 가지도 빠짐없이 필요한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그 요인들은 6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1. 식성 2. 성장 속도 3. 감금상태에서 번식시키는 문제 4. 골치아픈 성격 5. 겁먹는 버릇 6. 사회적 구조 가 있다. 이렇게 까다로운 절차들이 많았기 때문에 극소수의 대형 포유류 만이 가축화에 성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지도를 보면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세로축이, 유라시아는 가로축이 더 길다. 이 축의 방향은 농작물, 가축, 문자와 바퀴 등의 발명품의 전파속도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서남아시아에서는 작물화가 1번에 끝난 반면, 남북아메리카에서는 여러번 작물화가 이루어 졌다는 것을 보면 전자가 후자보다 전파속도가 빠름을 알 수 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도 빠른 전파를 통해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농작물의 작물화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유라시아는 동서로 축이 나있기 때문에 위도의 차이가 비교적 적고, 따라서 기후의 변화도 크지 않기 때문에 농작물이 적응을 잘 해서 빠르게 전파가 가능한 것이었다. 

  반면에 에티오피아와 남아공에 이르는 3200km의 열대지역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농작물이 전파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예컨데 B.C 8000년에 가축화된 소, 양, 염소는 남아공에 A.D 1~200년 경 도착했다. 남북아메리카도 마찬가지 이유로 전파속도가 더디었다. 멕시코의 옥수수, 호박, 누에콩은 1100km 떨어진 미국 서남부에 도착할 때 까지 수천 년이 걸렸다. 농작물 외에도 바퀴나 문자 같은 기술, 발명품 들도 축의 방향에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요인들은 문명 발달 속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축의 방향을 중심으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회전했던 것이다.


제 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인류의 역사에서 주요 사망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페스트, 콜레라 등은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된 전염병이다. 이러한 세균들도 마찬가지로 진화의 과정을 거쳤는데 점점 많은 번식을 위해 진화하다 보니 인간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주고 죽게 한 것이다. 인간이 정착 생활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세균들 입장에서는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그 결과 흑사병은 중세 유럽 인구의 1/4를 죽게 만들었고 제 1차 세계대전 후에 유행한 인플루엔자에 의해 사망한 인구 수는 2100만명이 넘는다. 물론 감염에 의해 진화한 항체가 생기면 이후에는 그 질병에 감염되지 않지만 그에 맞춰 세균들도 진화한다. 이러한 질병은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또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전염병은 유럽인의 식민지화의 장애물이 되었다.

  '미개인'과 '문명인'을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는 문자이다. 역사상 최초의 문자는 B.C 3000년경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수메르인의 설형문자인데 이처럼 독립적으로 문자가 발생한 사례는 인류 역사상 몇 번 없을 정도로 드물다. 대부분의 문자 체계는 다른 문명의 문자체계에서 변형되었거나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든 경우이다. 알파벳의 경우도 B.C 2000~1000 년경 생겨나고 난 후 로마알파벳, 키릴 알파벳, 그리스 알파벳 등으로 변형이 되었고 이러한 문자들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알파벳 체계가 완성된 것이다. 초기의 문자체계는 불완전하거나 모호하거나 복잡하거나 이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적었고 주로 사회적으로 계층화하고 복잡한 중앙 집권적 정치제도를 갖추고 있는 사회에서 탄생한 것이다. 

  문자와 더불어 문명의 발달을 판가름 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가 기술이다. 기술이 이렇게 대륙마다 다른 속도로 발달한 이유는 필요로 했던 시기와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B.C 1700 년경 세계 최초의 인쇄물인 파이스토스 원판을 만든 기술자는 그 사회에서 그것을 대규모로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발달시키지 못 한 것이고 토머스 에디슨의 축음기는 발명 후 (발명가의 의도와 다른)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아 녹음기로 성공하게 된 것이다. 기술은 어느 영웅의 개별적 행동을 통해서가 아닌 누적된 여러 기술자, 발명가의 행동들을 통해 발전하고 발명이 된 후에 예상치 못한 새로운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발명품이 그 사회에서 수용이 되려면 1. 기존 기술과 비교되는 경제적 이점 2. 사회적 가치관 및 위신 3. 기득권과의 양립 가능성 4. 그 기술의 이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지 난이도 등의 조건들을 따져보아야 한다. 어떤 대륙이든지, 어떤 시대이든지 혁신적인 사회도 있었고 보수적인 사회도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문명적으로 발달된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항상 혁신적이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또한 발명품이 전파되는 방식은 한 사회가 다른 사회의 발명품을 알고 수용하는 방식이 있고, 또 다른 방식은 그 발명품을 가지지 못한 사회가 불리한 여건에 놓여 정복당하고 그로 인해 발명품을 가진 사회로 교체가 되는 것이다.   

  인간사회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면 무리, 부족, 추장사회, 국가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분류기준은 구성원 수나 정부의 형태, 종교 유무, 경제 구조 등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초기적인 형태의 무리 사회는 구성원 대부분 또는 전부가 하나 또는 몇 개의 확대가족, 즉 혈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도나 계층은 전혀 없고 '평등주의적' 조직이다. 

  이러한 조직에서 진화한 다음 단계가 부족 사회이다. 정착 생활을 하고 씨족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하게 된다. 씨족끼리 서로 배우자를 주고 받으며, 토지도 특정 씨족이 소유한다. 구성원 수가 아직 수 백명 정도이기 때문에 서로가 다 아는 사이이다. 부족도 마찬가지로 '평등주의적'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관료, 경찰력, 조세 따위는 없다.

  부족보다 더 진화한 사회는 추장 사회로 규모가 수천에서 수만명에 이르고 중앙 집권적 권위체인 추장이 존재했다. 이전 단계까진 오로지 호혜적인 교환만 보였던 경제적 특징이 추장 사회에 와서는 재 분배 경제 체계가 도입된다. 추장 사회서부터 권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도둑 정치', 즉 가진자가 가지지 못한 자의 재산을 뺏는 정치, 가 시작되었다.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지배자들은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1. 대중을 무장해제하고 엘리트 계급을 무장 2. 거두어 들인 공물을 대중이 좋아하는 일에 사용함으로서 기쁘게 함 3. 무력을 독점하여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폭력억제 대중의 행복 도모 4. 도둑 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구성


제 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


  오스트레일리아는 원주민들에 의해 시작된 사회였고 현재 뉴기니 원주민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발달된 사회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대륙 불균형이 생긴 원인은 최근 2~3백 년 사이 유럽 이주민들이 그들의 문명을 오스트레일리아에 전파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겠지만 중국의 영향이 제일 컸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명의 시작도 굉장히 빨랐고 지리적 여건도 좋았다. 면적이 넓고 환경이 다양해서 수 많은 지방 문화가 생겨났지만 그러한 경쟁이 더 큰 중국을 만들어 주었다. 

  지난 6000년 동안 일어났던 가장 큰 인구 팽창 중 하나는 오스트로네시아의 팽창이었다. 이 팽창은 인도네시아, 뉴기니 해안 지방, 열대 동남아시아 등지까지 진행되었고 여러가지 다양한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전했다. 남북아메리카는 유라시아에 비해 발전속도가 느렸는데 그 중에서 식량 생산이 가장 주된 요인이다. 유라시아의 13종의 대형 포유류 중 남북아메리카에서 가축화된 종은 라마/알파카 한 종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병원균, 기술적 우위, 금속의 사용, 동력 공급원, 해상운송 측면에서도 유라시아가 압도적으로 발달되어 있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지리적, 생물학적 우연 때문이지, 유럽인들과 아프리카 인들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