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24 나귀 가죽 (La Peau de chagrin, 오노레 드 발자크 ,1831)

[Book Review] #24 나귀 가죽 (La Peau de chagrin, 오노레 드 발자크 ,1831)



  이 소설은 작품 안의 시대적 배경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흡수가 잘 되는 소설이다. 1830년 7월 혁명 직후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19세기 초반 프랑스는 봉건적 신분주의에 기초한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특권의 철폐를 바탕으로 새로운 체제가 모색되는 시기이며, 전통적 농업 생산양식이 위축되고 근대적 생산양식인 산업 및 금융자본주의가 자리잡아 나가기 시작한 시기이다. 즉, 삶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변하는 격변기였던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라파엘은 도박장에서 판이 큰 도박을 하게 된다. 큰 판에서 돈을 잃은 그는 결국 센 강에서 투신 자살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낮보다는 밤에 죽는게 좀 더 명예롭다고 생각해서 시간을 끌다가 어느 골동품 가게에 들어가고, 그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주인은 나귀가죽을 보여주게 된다. 이 가죽을 가진 자는 자신의 욕망을 원하는 대로 채울 수 있고, 그 대신 그럴 때 마다 가죽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며, 가죽이 소멸되면 삶도 끝난다는 설명을 듣게 된다. 라파엘은 이 가죽을 충동적으로 구매를 하게 된다.


  가게에서 나온 뒤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화려한 연회에 초대받은 라파엘은 맛있는 음식과 고급 와인, 아름다운 여자들이 있는 그 곳에서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 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애인을 단두대에서 잃고 바람을 맞은 적도 있는 미모의 여인 아퀼리나를 만나 인생에서 쾌락을 즐기는 것 보다 가치있는 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아까 만난 친구 에밀이 왜 자살을 결심하였는지 라파엘에게 물어보게 되고, 라파엘은 에밀에게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 했다. 


  라파엘은 어린시절 아버지의 규율 속에서 엄격한 법학 공부를 하다가 스무살에 도박장에서 일탈을 하게 된다. 아버지께 예상치 못한 용서를 받은 뒤 법조인으로 동업자가 되어 일하다가 복고왕정 시기 몰락한 귀족들과의 사건에 연루가 되고 그 사건으로 거의 모든 재산과 수입을 몰수당한 뒤 얼마 후 아버지는 돌아가시게 된다. 그 뒤 몇 년 동안 가난하게 살다가 하숙집 딸 폴린의 사정을 알게 되고 교육을 맡게 되어 도와주다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가 우연히 파리에서 제일 미인으로 알려진 부유한 상속녀 페도라를 만나게 된다. 항상 자신의 미모와 유산만 보고 달려드는 남자들만 보다가 그렇지 않은 라파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며 친해지게 된다. 라파엘은 페도라를 가지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하지만 경제적 한계와 그녀의 사랑에 대한 독특한 철학이 맞지 않아 그녀를 향한 고백은 거절당한다.


  그 뒤로 빈털털이로 방랑한 삶을 살고 자살도 여러번 생각하다가 이 나귀가죽을 가지게 되었다는 그는 다음날 에밀과 같이 돌아간 연회장에서 한 사령관의 엄청난 유산을 얼떨결에 받게 된다. 그리고 가죽을 확인해 보니 가죽의 크기가 약간 줄어 있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났고 라파엘은 크고 아름다운 집에서 호화롭게 살게 된다. 하지만 오페라 극장에 가서도 마음 편히 지낼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아름다운 여인들을 만날 수록 나귀가죽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부자가 된 폴린을 만나고 그녀의 엄청난 구애를 받게 되며 결국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라파엘은 나귀가죽의 크기가 계속 줄어드는 것을 보며 마음 편히 사랑을 하지 못하고 결국 과학자들에게 물어보기로 결심한다. 동물학자, 기계역학 전문가, 화학자 등등 여러 과학자를 만났지만 해답을 찾지 못했고 원치 않는 행운이 계속 찾아옴에도 괴로하면서 살다가 결국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에 품에 안겨 죽는다.


  이 작품의 원제는 'La Peau de chagrin'으로, 'chagrin'은 가죽 외에도 '슬픔, 번민'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즉 제목에 '슬픔이 갉아먹는 목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인생의 에너지 총량을 의미하는 '가죽'을 통해 욕망을 위해 존재의 파멸을 부를 것인가, 아니면 존재의 지속을 위해 욕망을 억제할 것인가라는 선택이 불가능한 모순된 문제를 제기한다. 작품의 주인공 라파엘은 원대한 야심을 품고 부와 명예, 사랑을 갈구하지만 자신을 외면하는 비정한 사회 속에서 절망에 빠져 자살을 결심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전 정체불명의 노인에게서 마법의 가죽을 얻게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는 라파엘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귀 가죽>은 19세기 전반 격변하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당대의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환상의 요소를 가미해 욕망과 모순되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