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웬의 서재] #3. 입 속의 검은 잎 (1989)
끄적끄적/Book Review

[오웬의 서재] #3. 입 속의 검은 잎 (1989)

나는 최근에 대학 선배들과 온라인으로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 번갈아 가면서 책을 고르고 발제문을 써서 독서 모임을 하는데 상당히 얻어가는 것이 많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내가 평소에 혼자서 읽을 일이 거의 없을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을 가지고 사람들과 생각을 교류할 수 있다는 점? ㅎㅎ 그래서 나는 이 모임에 들어간지 얼마 오래되진 않았지만 (심지어 실제로 아직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음... 코로나 빨리 끝나라) 되게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참여하려는 모임이다.

이번에는 기형도 시인의 <입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집을 읽었다. 기형도 시인은 상당히 이른 나이에 요절하였으며 이 시집은 유고 시집인데 20대 초반부터, 그러니까 그분께서 대학 시절부터 썼던 시가 이 시집에 묶여져 있다. 80년대 대학생들은 지금의 대학생들보다 재밌는 것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생각이 깊다. 나는 그런 점이 너무 좋다. 

기본적으로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고 당시 사회는 여러 모로 밝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시는 분위기가 무겁고 우울하다. 시에는 전반적으로 규칙성이 없으며 제각각의 호흡과 리듬을 가진다. 부정적인 감정(우울, 절망, 고통)을 억지로 긍정적으로 승화하거나 이를 통해 얻는 교훈을 무리하게 쥐어짜지 않고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시라는 장르는 모호하고 난해하다. 시란 무엇인가? <현대시인론>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표현하면 첫째로 시는 과장되어 있다. 시의 과도함은 숭고(인간의 이해 능력을 초과하는, 경외감이나 열정적 강렬함을 환기시키는)에 대한 시의 열망을 표현한다. 둘째로 시는 의미없어 보이는 단어들의 나열이나 리듬이다. 이는 언어를 전경화 함으로써 해석과 관련한 주의를 환기하고, 새로운 의미 구조를 창조함을 나타낸다. 아무 생각 없이 끼적이면서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그 수수께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 시집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읽었던 몇 가지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전문가

 

이사 온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의 집 담장들은 모두 빛나는 유리들로 세워졌다

 

골목에서 놀고 있는 부주의한 아이들이

잠깐의 실수 때문에

풍성한 햇빛을 복사해내는

그 유리담장을 박살내곤 했다

 

그러나 얘들아, 상관없다

유리는 또 갈아끼우면 되지

마음껏 이 골목에서 놀렴

 

유리를 깬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이상한 표정을 짓던 다른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곧 즐거워 했다

견고한 송판으로 담을 쌓으면 어떨까

주장하는 아이들은, 그 아름다운

골목에서 즉시 추방되었다

 

유리담장은 매일같이 깨어졌다

필요한 시일이 지난 후,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충실한 그의 부하가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유리담장을 떼어냈을 때, 그 골목은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

판명되었다. 일렬로 선 아이들은

묵묵히 벽돌을 날랐다

 

이 시는 여러가지 단어들이 되게 다양한 해석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사 온 그, 유리담장, 아이들, 햇빛 등등. 내가 해석한 방향은 이렇다. 이 시에서 유리담장은 '정의, 양심, 선' 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아이들(일반 시민들)은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고의적이든, 실수로든 이러한 중요한 가치들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양심있는 어른이라면 이러한 행동들을 꾸짖고 유리가 깨지지 않게 보호를 해 주어야 하는데, 그 이사온 그로 표현된 당시의 기득권이자 지식인들은 이러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깨지면 다시 갈아끼우면 되는 정도로 가볍게 취급했다. 올바른 목소리는 묵살되고 추방되었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소중한 가치를 잊은 사람들만 남게 되고 묵묵히 이사온 그의 말을 따르게 된 것이다.

어느날 기득권 세력은 그 정의, 양심, 선을 아예 대놓고 걷어 치웠다. 그래서 햇빛이 들지 않는 곳임이 판명이 되었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상황이지만, 이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이 상황이 문제인지 모르고 묵묵히 자기 일을 했다고 시인이 당시 시대상을 풍자한 시가 아닌가 스스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시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실제로 우리 독서 모임때도 사람들마다 다른 해석을 내 놓았어서 흥미로웠다.

 

대학 시절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의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저자가 대학을 다녔던 80년대 초반은 지금 대학이랑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책도 함부로 읽을 수 없었고, 목소리를 마음대로 낼 수도 없었다. 어쩌다가 그러한 용기있는 행동을 한 청년이 하게 되면 본보기로 끌려가서 고문을 받았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침묵했다. 

내가 과연 그 당시에 대학생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었을까? 내가 30년 일찍 태어났더라면? 나는 목소리를 냈었을 것 같다. 그리고 힘 닿는 데까지 주변 사람들을 계몽하고, 무엇이 정말 옳은 것인지 알리면서 이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했을 것 같다. 물론 그랬다면 나는 감옥에 갔거나 고문을 받았을 확률이 아주 높다. 그래서.. 지금 21세기에 살아가고 있음이 감사하다 ㅎㅎ

 

흔해빠진 독서

 

휴일의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

죽은 자들은 모두가 겸손하며, 그 생애는 이해하기 쉽다

나 역시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을 허용했지만

때때로 죽은 자들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수북한 턱수염이 매력적인 이 두꺼운 책의 저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불행한 생을 보냈다, 위대한 작가들이란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다 갔다, 그들이 선택할 삶은 이제 없다

몇 개의 도화지를 방랑하며 청춘을 탕진한 작가는

엎질러진 것이 가난뿐인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는 중이다

그는 분명 그 누구보다 인생의 고통을 잘 이해하게 되겠지만

종잇장만 바스락거릴 뿐, 틀림없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내 손가락은 까닭 없이 성급해지는 것이다

휴일이 지나가면 그뿐, 그 누가 나를 빌려가겠는가

나는 분명 감동적인 충고를 늘어놓을 저자를 눕혀두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저녁의 거리로 나간다

휴일의 행인들은 하나같이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그러면 종종 묻고 싶어진다, 내 무시무시한 생애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 거추장스러운 마음을 망치기 위해

가엾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흙탕물 주위를 나는 기웃거렸던가!

그러면 그대들은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은 너무 많이 읽었다고

대부분 쓸모없는 죽은 자들을 당신이 좀 덜어가달라고

 

나는 이 시가 개인적으로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힘든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시대 속에서 무언가를 파고들어 찾아가는 시인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 정말 좋은 시는, 그리고 정말 좋은 책은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고 매번 다른 새로운 생각을 나에게 선물해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시도 나에게는 그렇다. 힘든 상황을 애써 좋게 포장하거나 억지로 교훈을 끄집어 내려고 하지 않고 그냥 이 상황 자체를 덤덤하게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모습이 나는 더 슬프면서 더 와닿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들이 바로 이런 공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삶에 치여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청년들이 한 번씩 천천이 곱씹으며 읽으면 좋을 시집인 것 같다. 우리가 삶에서 뭔가 대단한 의미를 찾는 것도 물론 중요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렇게 그냥 살아가고 있음을 온전하게 느끼고.. 그 안에서 힘든 거는 힘든 대로 표현하고 그 와중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를 찾아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시집에 대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