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대학을 다니고 있다면, 아니면 곧 다닐 예정이라면 다들 한 번씩쯤 해 보았을 질문이다. 실제로 2013년 경에 EBS에서 해당 주제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 진 적도 있었다. 나는 당시 스무살이었는데, 아직 열심히 놀기 바쁜 시기어서 그 다큐에 나왔던 선배들의 이야기가 크게 와 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어찌어찌 7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현재 대학교 졸업이 보름도 안 남은 상황에 놓여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졸업식도 취소되고, 학위 가운도 대여가 될지 말지 모르는 (엄청 화가 나는) 상황속에서 나는 졸업할 때 즈음 발견한 우리가 대학을 가는 의미에 대해 끄적여 보고자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이다.
나는 대학에 입학할 때 신소재공학부라는 전공으로 입학을 했다. 솔직히 뭔지 잘 모르고 입학했다. 그렇게 잘 안 맞는 전공을 억지로 안고 가다가, 군대를 다녀오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진로를 틀었다. 그래서 2년 정도 “열심히” 준비를 했고 지금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 분야는 굳이 대학 학위가 필요가 없다. 물론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실제로 같이 일 하는 동료중에서도 대학을 안 나오고 나보다 훨씬 더 잘 하는 분들도 너무나도 많이 보았고, 일을 하면서도 대학 학위가 꼭 필요한지 느껴본 적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유투브나 MOOC 등에서 온라인 강의도 정말 잘 되어 있고 상당수는 무료이거나 대학 학비에 비해 말도 안 되게 저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먼 훗날 내 자녀가 대학을 갈지 말지 고민을 하고 있게 된다면, 대학을 가라고 말해줄 것이다. 겉보기에는 돈이나 시간적인 면에서 손해를 보는 점이 많아 보이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학을 가야 하는 나만의 이유를 지금 이제 졸업 열흘 정도 앞둔 시점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대학교를 그렇게 성실하게 다닌 편도 아니었고, 학점도 평균보다 조금 아래고,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는 것보다 강의실 밖에 일에 더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었기에 내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무시해도 좋다.
우리는 “비교적 안전하게” 이 세상의 각기 다른 분야에서 끝을 부딪혀 보기 위해서 대학에 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까지 대한민국의 상당수는 같은 목표, 같은 방향으로 달려왔다. 그러한 많은 친구들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전공에 따라 길이 나뉘며, 같은 전공 안에서도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경우도 정말 많다. 모두가 다 처음 가는 길, 그리고 서로가 다른 길을 가기에 누가 어떤 길을 가는지도 모르고 자기 갈 길만 신경쓰기에도 바쁜 시간이 찾아 오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가는 길을 전속력으로 뛰어 갈 것이고, 누군가는 비교적 여유있게 천천히 갈 것이다. 사실 이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보는 대학생은 경험이나 역량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뛰어가든지, 걸어가든지 그들은 자신이 처음 가는 길에서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벽을 만났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뒤돌아 가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고, 옆으로 다른 방향을 찾아서 그만큼 늦었으니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말정말 소수이겠지만... 그 벽이 진짜 벽인지 의심을 가지고 밀어서 밀리는 지를 확인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어느 쪽이든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든지 존중을 받아 마땅하다.
다만, 앞서 말한 대학생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벽에 부딪히면... 매우 아프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드는 생각은, 대학생은 이 벽에 부딪힐 때 이미 “대학생”이라는 신분만으로 보호대를 착용한 상태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맨몸으로 부딪히는 것보다, 훨씬 덜 아프다. 물론 아직 부딪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 마저도 아플 것이다. 이렇게 아픈 몸을 붙잡고 대학생들은 서두에서 언급한 것 처럼 두 세가지 중의 하나의 선택을 한다. 아파서 천천히 뒤로 돌아가거나, 옆에 열린 방향으로 더 빠르게 나아가거나, 아프긴 하지만 털어버리고 벽을 밀어보거나 말이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는 시점보다 지금 졸업하는 시점에서 더 모르는 것이 많다고 느낀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아는 것이 많아진다는 생각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언급한 맥락들에 이어서 생각해 보면, 대학생은 지식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고 사실 되게 많은 벽에 둘러쌓여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 안에서만 뱅뱅 돌면 내가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좀만 낯선 길로 달려가다 보면 벽에 부딪히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이러한 슬픈 상황 가운데, 대학생이 가진 거의 유일하다 싶은 특권은 바로 “보호대”를 차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회는 대학생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그럽다.
아무리 대학생들이 “보호대”를 차고 있다고 해서, 아무 벽이나 계속 부딪히며 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벽에 부딪히면 보호대를 차고 있어도 아프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보호대를 차고 벽에 부딪히면 엄청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의 큰 부상은 거의 입지 않는다. 생각(부딪히면 이만큼 아플거다라는 예감)보다 그렇게 아프지 않을 확률도 높다.
나는 지난 7년 동안 그래도 나와 비슷한 또래에 평균적인 대학생들보다는 벽에 더 많이 부딪혀 보았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아팠지만, 지금은 멀쩡하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그러한 벽에 부딪혔던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고, 내 몸에 근육과 힘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보호대를 차고만 있다고 해서 근육과 힘이 생기지는 않는다. 보호대를 차고 힘든 훈련들을 “덜 힘들게” 계속 해야 근육과 힘이 생긴다. 이렇게 말 해도 나는 지금 와서 학교 다닐 때 더 많이 벽에 부딪혀 보지 못한 순간들이 후회에 남는다.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스무살에 받은 질문에 대한 7년만의 나의 대답이다.
'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어] 라디오 처럼 들으며 하는 프랑스어 공부 Frenchpod101.com (0) | 2020.03.28 |
---|---|
비판의 중요성에 대하여 (0) | 2020.03.14 |
[링글] 영어 스피킹 연습을 하고 싶다면? (0) | 2019.09.01 |
과연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0) | 2019.06.19 |
2019 아식스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뒤늦은 후기 (0) | 2019.06.11 |